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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 사랜드/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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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자르 2세와 형식적 입헌 === 1894년 즉위한 라자르 2세(1894~1917)는 제정의 마지막 차르였다. 그의 대관식이 열린 날 인크론슈타트의 고대 수문이 녹슬어 열리지 않았다는 일화는 훗날 제정의 운명을 예고한 장면으로 자주 인용되었다. 1897년 재무대신 알렉사 반코비치의 주도로 금본위제가 도입되었고, 1901년 처음으로 전국 인구조사가 명해졌다. 20세기 초 공장 지대에서는 노동 운동이 자라났다. 1902년 가을 인터그라드 철도 공작창 파업은 노동자 공제회가 주도한 첫 대규모 파업이었고, 훗날 사비에트의 초대 서기장이 되는 [[이오시프 노스탈린]]도 이 파업을 이끈 혐의로 수배되어 러시아로 달아났다. 1905년 [[1905년 러시아 혁명|러시아 혁명]]의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그라드에 총파업이 일어나고 평원 곳곳에서 농민들이 영지 수문을 부수는 봉기가 번졌다. 라자르 2세는 1906년 말까지 봉기를 군대로 진압한 뒤, 1907년 《국가기본법》을 공포했다. 국가기본법은 사보르를 양원제 의회로 되살리고, 결사의 자유를 제한적으로 인정하며, 총리가 이끄는 대신회의를 상설 기구로 만들었다. 그러나 법률은 차르의 재가 없이는 효력이 없었고, 차르는 사보르를 언제든 해산할 수 있었으며,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영주 농노에게는 선거권조차 없었다. 사보르는 1907년, 1910년, 1913년 세 번 소집되었다가 세 번 모두 해산되었다. 1913년 하원이 농노 해방 법안을 상정하자 라자르 2세는 개원 4개월 만에 하원을 해산하고 다음 선거를 무기한 미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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